ICT 레이더/CEO 스토리

마화텅 이야기

kusson 2018. 5. 3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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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화텅(Pony Ma)은 중국 텐센트의  창업자이다.  2018년 5월 현재 텐센트는 한국의 삼성전자를 제치고 시총대비 아시아 1위에 올라있다. 텐센트의 현재 시가총액은 대략 5천억 달러, 약 530조원으로 마화텅의 개인 자산도 470억 달러(약 50조원)이다. 이로서 알리바바의 마윈을 제치고 중국 최고의 부호에 등극했다. 텐센트는 중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최고로 꼽히는 혁신 기업이지만 CEO인 마화텅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알리바바의 마윈이 적극적으로 언론을 이용하는 스타일인 반면 마화텅은 언론에 나서길 꺼리기 때문인데 이번 시간에는 47세의 나이로 아시아 최고의 부호에 오른 마화텅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텐센트 창업자 마화텅


1. 어린시절

마화텅은 1971년 하이난 섬(해남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마천슈는 공산당 간부로 선전시 항운총공사 사장과 염전항 그룹의 부총경리를 지냈고 어머니 황후이칭은 텐센트 창립때 절반이상의 자금(60%)을 공급할 정도의 재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마화텅의 어린시절은 상당히 유복한 상태였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마화텅같은 관료 2세를 관얼다이(官二代)라고 부르는데 대부분의 중국 젊은이 들이 겪었던 생활고나 학업에 있어서 별 어려움 없이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학창시절




10대에 선전으로 이사해서 선전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 부모님을 졸라 일반인의 4개월 월급에 해당




하는 비싼 천체 망원경을 샀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학창시절에는 천문학도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1989년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해에 선전대학교에 입학하는데 베이징에 있는 일류 대학에도 진학 할 수 있을 만




큼 성적이 좋았지만 천문학과가 있는 선전대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진학해서는 천문학보다는 컴퓨




터 사이언스를 공부하면서 마화텅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때마침 중국에서도 컴퓨터가 도입되기 시작하던 시기




라 마화텅은 컴퓨터에 푹 빠지게 된다. 대학 시절엔 천재 프로그래머로 또 해커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데 전산실 




컴퓨터 하드드라이브를 잠궈 관리자가 열지 못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3. 창업

1998년 4명의 친구들과 텐센트를 창업했다. 처음에는 삐삐라고 부르던 무선호출기와 인터넷 기술을 결합한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러나 곧 삐삐시대가 저무는 바람에 새로운 사업을 찾던 중 우연히 ICQ라는 메신저를 발견하고 이를 베껴 OICQ라는 짝퉁 메신저를 내놓는다. 이것으로 첫 대박의 경험을 하게되는데 OICQ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때 ICQ를 인수한 미국의 AOL사로부터 소송을 당하게 된다. 아마 이름부터 서비스 내용까지 비슷한 OICQ에 대해서 ICQ측에서 가만히 두고 보긴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소송에 휘말려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자 OICQ의 이름을 QQ로 바꾸고 남의 사업을 베끼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큰 교훈을 얻게 된다.


텐센트의 이름도 당시 삐삐의 문자 전송료가 10센트였기에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젊은 친구들이 만들어낸 가볍고 쉬운 브랜드가 이렇게 탄생했다.



4. 싸이월드 아바타에 약간의 아이디어를 입힌 QQ

ICQ의 운명과 QQ의 운명은 이후 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AOL에 인수된 ICQ는 그 이후 별다른 서비스를 내놓지 못하고 마이크로 소프트의 인스턴트 메신저에 밀리면서 그대로 사라진 반면 OICQ에서 QQ로 이름을 바꾼 이 메신저는 중국 국민 메신저로 발돋움 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다. 이용자 수가 1억명을 돌파하자 마화텅은 QQ의 수익모델을 놓고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한국의 싸이월드였다. 싸이월드가 아바타에 입힐 예쁜 아이템을 파는 것에 주목한 그는 그기에 약간의 아이디어를 입혀 QQ에 접목한다. 즉 QQ에서는 아바타에 진짜 옷을 입히기로 한 것이다. 즉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서 진짜 옷을 파는 작업을 한 것이다. 이 방식은 패션브랜드와 이용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면서 수억명의 이용자를 모으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5.카카오톡의 짝퉁 위챗, 10억명의 삶을 바꾸다

QQ로 정상에 도달하고 보니 인터넷 메신저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제는 모바일 메신저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2009년 5월에 나온 와츠앱이란 앱이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2010년 3월에 카카오 톡이란 앱이 출시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이에 모방의 달인인 마화텅은 와츠앱과 카카오 톡을 비교분석한 후 카카오 톡을 모방하기로 결정한다. 우리가 잘 알듯이 카카오 톡은 무료 문자메시지 서비스로 출발했지만 이후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었다. 무료 음성통화와 영상통화 거기에 사진, 동영상, 음성 메일서비스를 제공하며 일대일 및 그룹 채팅 기능도 지원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카카오 톡도 카카오 페이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으나 한국의 특성상 카카오 페이는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텐센트에서 내놓은 위챗은 중국인의 입맛에 맛는 맛춤형 서비스는 물론 위챗 페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13억 인구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위챗페이는 은행결재 서비스를 능가하는 거대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현재 위챗은 10억명의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앱중 하나가되었다.




6.짝퉁으로 게임 평정한 진짜 '영광의 왕'

텐센트의 가장 큰 사업 분야는 게임이다. 텐센트에서 게임에 관심을 가진 것은 상당히 오래전 일이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한 시점은 다른 나라의 게임을 수입해서 배급하면서 부터이다. 처음에는 한국의 게임을 주로 수입했다. 2003년에 3D 온라인 게임인 세피로스를 시작으로 스마일 게이트의 크로스 파이어, 넥슨의 던전앤 파이터, NC소프트의 블레이드 앤 소울 등이 중국에 소개되었다. 그 이후로 미국 블루홀의 배틀그라운드를 수입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11년에는 리그오브 레전드의 개발사인 라이엇 게임즈를 인수했고 현재 세계 최대 게임회사가 되었다. 작년에는 영광의 왕(왕자영요)이 세계 최고의 게임 타이틀이 되는 등 텐센트 수익중 가장 많은 부분을 게임이 차지하고 있다.




7. 마화텅의 명언들

"짝퉁도 창조다"

"빨리 베껴 중국화하면 그게 창조다. 모방이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방식의 창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모방을 하려는 대상과 모방 시기를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한국을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바보야, 중요한 것은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지금 사용자들이 좋아하느냐의 문제야."





이 말들에 마화텅이 어떻게 창업 20년만에 아시아 최대기업을 일굴 수 있었는지에 대한 힌트가 들어있다고 




본다. 처음부터 세계적인 아이디어를 짜내서 그것으로 뭔가를 이루는 것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단




지 남들이 이루어 놓은 그 위에서 조금씩 자신의 아이디어를 덧붙여 한발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 눈앞




에 와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현재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많은 창업자들에게 좋은 지침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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